향수병을 잊게 해준 국립세종수목원
내 마음속에 저장

설레는 한수정 초록 예찬
글. 김하나(사외독자)
너무 익숙해서 귀한지 몰랐던 초록빛 세상.
그 세상의 진가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 곳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.
이름 모를 식물들과 언제고 그늘을 내어주는 나무들이 가득했던 그곳.
지금 다시 꺼내 보아도 어찌나 싱그러운지.

한곳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
남들 다 앓는다는 향수병을 못 느꼈어요.

스무 살,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요. 그러던 중 대학교를 세종으로 가게 되었는데, 동기들과 자유롭게 놀 수 있으니 재밌더라고요. 그렇게 세종 곳곳을 놀러 다니며 신나게 놀았습니다. 갔던 곳 중 세종이 고향인 동기가 멋진 곳이 있다면서 데려갔던 국립세종수목원이 특히 좋았어요.

촌에서 살던 저는 수목원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몰랐어요. ‘집 주변에 널린 게 나무인데 왜 수목원에 가지?’라고 생각했었죠. 수목원에 가고 나서야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. 그곳은 그야말로, 초록빛 가득한 새로운 세계였거든요. 사계절전시온실에서 사진을 찍었던 추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. 사계절전시온실은 우리와 기후대가 다른 지중해식물과 열대식물을 볼 수 있는 곳인데요. 특히 자라면서 몸통이 물병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‘물병나무’라고 불리는 ‘케이바 물병나무’가 기억에 오래 남더라고요. 물병나무 앞에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제 방 벽면에 꾸며놨답니다. 아, 벌레를 잡아 소화해 영양분을 흡수하는 식충식물도 신기했어요. 결국 가든숍에서 달콤한 꿀로 곤충을 유인하여 포획한다는 파리지옥풀을 구입하기도 했답니다. 그야말로 모든 것이 신세계였어요.

대학 생활은 즐거운 나날이었지만,
몇 년이 지나니 향수병이 찾아오더군요.

괜히 우울해지고 에너지가 빠진 느낌이었어요. 그때 국립세종수목원이 생각나더라고요. 그곳은 산과 들, 온통 초록이었던 제 고향을 생각나게 했거든요.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초록의 식물을 보니깐 마음에 평화가 생기더라고요. 그 뒤로 계절이 바뀔 때면 꼭 한 번씩 갔던 것 같습니다.

그러던 어느 날, 고향에 계신 엄마가 딸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며 세종에 오셨어요. 자취를 시작하고 엄마가 올라오신 게 처음이어서 어디를 가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국립세종수목원이 생각났습니다.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해준 특별한 곳이기도 했고, 다리가 아프신 엄마와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이었거든요. 딸의 손에 이끌려 온 엄마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아하셨어요. “어머, 여기 너무 좋다~!”, “이건 무슨 식물일까?”, “너무 예쁘네!” 초록빛 자연 아래, 소녀처럼 좋아하시던 엄마의 모습을 사진으로 실컷 남겼어요. 그리고 엄마는 고향으로 가는 길에, 제게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. “딸, 좋은 데 데려가 줘서 고마워. 다음에 또 가자~!”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면 엄마는 그때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합니다. “거기, 수목원 참 좋았는데….” 대학을 졸업하고, 취직해 직장생활을 하며 바쁘게 사느라 못 갔지만,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. 더 늦기 전에, 엄마와 또 한 번 가야겠다고요.